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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책방

책,임자를 만나다
밴버드의 어리석음   |    폴 콜린스

1. 오프닝

 
거미들의 걸음이 빨라진 것 같습니다.
먹을 것 없는 건물의 흰 벽이나 천정은 더 넓어 보이고, 
길고 여윈 다리의 초조한 분주함이
꼭 거미의 일만은 아닌 것 같아서
괜히 달력의 남은 날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여름날 이슬과 햇살에 빛나던 은빛 거미줄들은
이제 해지고 빛을 잃어, 낡은 잿빛 그물처럼 보입니다. 
헐리는 거미의 집을 보면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더 이상 집을 짓지 않을 것입니다.’라는
릴케의 시가 생각나고,
거기 뒤따르는 시구(詩句)처럼
지금 고독한 사람이 되어 고독한 그대로 오랫동안 살며
깨어서 책을 읽고 긴 편지를 쓰고도 싶어지지요.

“인간은 가을이 오면, 독방에 앉은 자기 모습을 처음으로 거울에 비쳐보듯이 빤히 주변을 바라보게 된다.”
소설가 고바야시 다키지의 「독방수필」에 있는 문장처럼
홀로 깨어 새삼스럽게 주변을 둘러보게도 되겠죠.
혹은 딱히 속이 비거나 배가 고픈 것도 아닌데
이상한 허기 때문에 괜히 한밤중에 냉장고 문을 열어 보기도 합니다.
한해살이 거미의 가을 허기도 그런 것이었을까요.
다시 거미 얘기로 돌아왔으니, 바쇼의 하이쿠 속 거미에 나를 대입해 봅니다. 
‘거미여, 이 가을바람 속에 너는/ 무슨 목소리로/ 무슨 노래를 부르나?’
안녕하세요, 여기는 이동진의 빨간책방입니다.

 

 

 

2. 책, 임자를 만나다

'책, 임자를 만나다' 다음 시간에서 읽을 책은 <밴버드의 어리석음>입니다. ‘세상을 바꾸지 않은 열세 사람 이야기’가 담긴 책이죠. 한때 세간의 주목을 받고, 명성을 누렸지만 실패와 조롱의 나락으로 떨어진 사람들.
전 생애를 통해 꿈을 꾸고 열정을 바쳤지만 철저하게 역사에서 잊힌 사람들.
그런 이들의 조금은 기이한 삶을 발굴해서 재구성해낸 이 책.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밴버드의 어리석음>

1) 책 소개
이 책에는 전 세계, 여러 세기에 걸친 과학자, 화가, 작가, 사업가, 모험가 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한때 전도유망하게 무언가를 추구했지만 때를 맞추지 못한 탓에, 정직하지 못해서, 외고집이나 광기 때문에, 운이 따라주지 않아 삶의 종착역에서 변명과 아쉬움만을 남기고 역사 속에 사라진 사람들이다. 폴 콜린스는 논픽션의 경계를 넘나드는 글쓰기를 통해 마음을 울리는 이 기이한 인물들에게 새 생명을 불어넣는다. 열정의 위대함과 역사의 인색함, 성공과 실패의 모호한 경계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책.

 

2) 저자 소개 - 폴 콜린스
우리는 흔히 역사란 이미 인과 관계로 엮인 이야기로 존재하고, 다만 기술하는 관점만 다를 뿐이라고 여긴다. 그렇지만 실제 역사 연구가들은 시간이라는 묵직한 안개를 헤치고 과거 속을 더듬는 보물찾기를 끝없이 하고 있다. 땅속 깊은 곳에 묻힌 고대 유물을 파내듯이, 아무도 들춰보지 않는 고문서를 뒤져 전혀 다른 이야기,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를 찾아낸다. 그러다보면 정치·경제적 거물들만 등장하는 것이 아닌, 동시대 사람들의 말과 생각 가운데 살아있는 ‘진짜 그때 이야기’가 발굴된다. 그럴 때 역사는 박제되어 박물관에 안치된 것이 아니라, 현재에 도달하기까지 필부필부의 목소리들이 모여 함께 굴려온 거대한 수레바퀴의 비틀거리는 궤적임을 절감하게 된다.

폴 콜린스는 과거에 묻힌 미스터리, 역사의 빈틈에 천착하는 습성이 있다. ‘문학 탐정’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그는 고서적과 오래된 잡지, 신문, 서신 등을 뒤져 잊힌 사건들 뒤에 숨은 사연과 의미를 밝혀내는 능력이 뛰어나다. 그는 특히 과학 기술이 폭발적으로 발전하고, 인간의 상상력이 극대화 되었던 19세기 산업 혁명 시기에 관심이 많다. 가능성과 상상력이 넘쳤지만, 지금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기술로 세상을 이해할 수밖에 없었던 인간 군상들의 웃지 못 할 해프닝들이 그의 작품 곳곳에서 세밀하고 익살스럽게 그려진다.

<타블로이드 전쟁>에서는 미국 전역을 뒤흔들어 놓은 토막 살인 사건이 남긴 끝내 풀리지 않은 비밀을 추적했다. 또한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정도로 부상했으나 추락하고 잊히고 만 열세 사람의 이야기를 담은 《밴버드의 어리석음》, 자폐증이라는 용어가 하기 이전에 존재했던 자폐인들의 자취를 찾아가는 《네모난 못》, 민주주의의 사상적 아버지 토머스 페인의 영원히 행방불명된 유골을 찾아 헤매는 《토머스 페인 유골 분실 사건》 등의 전작에 더해, 올해 출간 예정인 《악마와 결투》에서는 200년 동안 미해결 사건으로 남아 있었던 “엘머 샌즈 살인 사건”의 범인을 쫓는다. 최근에 폴 콜린스는 세계 최초의 탐정 소설로 알려졌으나 저자가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았던 《노팅힐 미스터리》 작가의 정체를 당대 신문을 뒤져 밝혀낸 일을 <뉴욕타임스>에 실어 주목받기도 했다.

 

◆ 243-244회 <책, 임자를 만나다> 도서

<나를 보내지 마>

'책, 임자를 만나다' 다음 시간에서 읽을 책은 <나를 보내지 마>입니다.
올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가즈오 이시구라의 장편소설이죠.
이 책은 1990년대 후반 영국에서 외부와의 접촉이 일절 단절된 기숙학교 '헤일셤'을 졸업한 후,
간병사로 일하는 캐시의 시선을 통해 인간의 장기 이식을 목적으로 복제되어 온 클론들의 사랑과 성, 슬픈 운명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 책을 함께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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