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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통신
다 나가, 혼자 있고 싶으니까   |    이환천

▶ <다 나가, 혼자 있고 싶으니까>

드레스를 입고있는 아름다운 니모습을
니옆에서 내눈으로 직접볼줄 알았는데
이야밤에 모니터로 몰래보게 될줄이야

 

안녕하세요, 일도 연애도 뭐 하나 되는 일이 없는 우리들을 위한 술푼 인생의 시 《다 나가, 혼자 있고 싶으니까》를 편집한 위즈덤하우스의 박지혜입니다. 방금 읽어드린 시는 이환천 작가의 시 <너의 웨딩>입니다. 드레스를 입고 있는 아름다운 연인의 모습을 야밤에 모니터로 몰래 보는 남자의 상황이란 어떤 것일까요?


선배에게 하도 털려서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한 영혼을 소유한 쫄보사원일 수도 있고 소주를 마시긴 했는데 그렇게까지 취하지는 않아서 오타를 적당히 섞어 ‘자니, 니 새ㅇ각 놔서 술 완 잔 해따’라고 문자를 보내는 찌질한 취준생일 수도 있습니다. 누가누가 많이 먹나 부질없는 술싸움에 술잔에는 입도 안 댄 카운터의 술집주인만 배불리는 평범한 대학생일 수도 있고요.


SNS로 유명한 이환천 작가의 시가 매번 많은 이들의 공감과 ‘좋아요’를 받는 이유는 그 모든 시의 화자가 매사에 열심이고 언제나 진심으로 사람을 대하는 바로 ‘우리들’이기 때문일 겁니다. 열심히 노력해도 어떠한 자리에서나 항상 말단일 수밖에 없고 일류와 이류에 떠밀려 비난과 자책을 밥 먹듯 할 수밖에 없는 처절한 세대이지요. 중학생 시기에 IMF를 겪었던 저는 갑자기 아버지가 실직을 당한 뒤로 볶음김치만 싸오던 친구가 한숨을 쉬면서 ‘그나마 학교에 오니까 김치라도 싸오는 거야. 집에서는 간장만 먹어’라고 농담처럼 말하던 것을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무한경쟁’이나 ‘비정규직’ 같은 말들이 마치 유행어처럼 사람들 사이를 떠돌기 시작했지요. 대학생이 되었을 때, 제가 접한 세계는 그야말로 생존의 세계였습니다. 항상 외롭고 무언가 위축되었지만 그 와중에 사람을 만나고 우정도 깊어지는 일들이 저의 청춘 세계에서 벌어졌습니다. 82년생 김지영을 통해 만날 수 있는 한국사회의 단면이 있는 것처럼, 86년생 이환천의 시 세계에는 제가 살아냈던 청춘들의 모습이 녹아 있습니다. 하루 5천 원만 쓰기 같은 것이 생활의 목표가 되고, 속 깊은 얘기 한 번 털어놓고 싶어도 술값이 걱정되어 친구에게 전화 한 통 걸 수 없는 어딘가 슬프고 비루한 청춘의 모습이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너무 비극적이지 않게, 오히려 유쾌하고 긍정적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일 더하기 일은 매우 힒듬’이라는 시구나 ‘노페이는 노어게인’ 같은 시구가 묘사하는 현실은 너무도 암담하지만, 이 시들을 읽는 순간에는 그 재치에 피식 웃음을 짓게 됩니다. ‘편’이라는 시의 시구처럼 ‘니편내편 할것없이 우리들은’ 모두 ‘못생긴편’이기 때문에 못생긴 이 세대만이 알 수 있는 바로 그 감성들을 영리한 촉으로 긁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환천 작가가 직접 작업한 일러스트는 재치 있기 그지없고, 다수의 도서에서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디자인을 선보였던 이기준 작가의 디자인도 무척 훌륭합니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공감하기 좋은 시집이고 공유하기 좋은 도서입니다. 출근길은 빽빽하고, 밀린 일은 산더미고, 잔소리는 귀에 차고, 마음속이 타들어갈 때 ‘다 나가, 혼자 있고 싶으니까’ 외쳐버리고 싶을 때, 쭈구리처럼 구석에 앉아 몰래 키득거리기 좋은 시집입니다.


여러분, 이환천 작가의 시집 《다 나가, 혼자 있고 싶으니까》에 ‘좋아요’를 눌러주세요. 월급은 빚을 이길 수 없지만, 이 책이 여러분의 곰팡내 낀 마음에 빛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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